1월 넷째주 주말 예능 리뷰 TV KILL


1. 무한도전

근래 하하와 노홍철이 <무한도전>안에서 맡는 포지션은 서브였다. 최근 ‘무한상사’ 편에서는 상황극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정준하, 박명수를 받혔고, ‘나름 가수다’ 편에서는 자의는 아니지만 하위권을 차지했다. 작년 <무한도전> 전편을 놓고 봐도 그들이 방송 전면에 나선 적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그들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정확히는, 캐릭터가 소비되는 방식이 변화했다.

작년 시상식 시즌이 지나고 김태호 PD는 ‘최근 가장 팀플레이가 잘 맞는다’고 언급했다. 각자 주력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멤버들은 서로의 장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멤버가 같은 기회를 부여받는 ‘도전’이나 추격전을 포함한 ‘게임’ 컨셉이 아니라면 매번 주연급으로 활약하는 멤버가 생긴다. 요즘 무한도전을 보면 일곱 명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웃음의 시너지를 만들기보다 각 특집에 유능하거나 흐름을 탄 사람에게 힘을 몰아주는 형국이다. 모든 자리의 역할이 중요한 스포츠 팀이 주/조연이 나뉘는 드라마 팀이 되었다.

길이 들어오기 전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성장해 갈 때, 출연자를 어떤 조합으로 묶어도 균질한 웃음이 보장됐다. 그 조합을 묶는 일은 캐릭터라이징에 천부적인 유재석이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유재석은 캐릭터 게임의 유닛이기보다 전략 센터에 가까웠다. 이후 길이 들어오고 캐릭터가 완숙되었을 때 자연히 인물의 성향과 장단점에 따라 계층이 생겼다. <무한도전>에 버금가는 장수 예능이 없기에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고, 캐릭터라이징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을 소모적으로 처리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캐릭터가 소모된 후 작위적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는 제작진의 무리수를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SBS의 리얼 버라이어티 실패작들이 대개 여기 해당한다.

<무한도전>은 부조화를 그대로 끌고 간다. 작위를 감행하지 않는다. 이건 제작진이 명민해서가 아니라, 나는 전적으로, 성실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하하vs홍철 특집이라 보았다. 무한도전는 캐릭터를 소모하지 않고 공고히 하는 법을 안다.

몇 주 전 방송에서 짧게 지나간 부분이지만, 노홍철이 하하에게 ‘(상황극의 수위가)약한 것 같으니 조금 더 세게 하자’고 했던 것이 언급됐다. 둘의 라이벌 관계는 사실 누가 보든 연기에 가까운 것을 안다. 이렇게 작은 감정선을 실제처럼 부풀리는 것은 리얼 예능에서 자주 쓰는 전략이고, 연기자가 능숙하지 못하면 시청자를 거슬리게 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은 이렇게 불어난, 연기에 가까운, 그래서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아이템을 새롭게 요리했다. 그 둘의 라이벌 감정이 진실과 멀다면, 다른 책임을 부과해서 실제화 시킨 것이다. 어깨 위에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성원을 얹고, 거대한 규모의 무대로 주연으로서의 부담감을 실었다. <무한도전>은 ‘명수는 아홉 살’ 편의 상황극이나 ‘정준하의 기습공격’ 편의 게임들처럼 캐릭터를 증폭시켜 활용하면서 쇼의 공기에 진정성을 담는다. ‘하하 대 홍철’ 편에서 이 새로운 문법에 상대적으로 배재되었던 이 둘이 전면에 배치되며, 프로그램 기획에 외연을 한층 더 넓혔다. 유닛의 새로운 배치법의 경험치가 쌓이고 있다.


2. K-pop 스타

챙겨보는 또 하나의 예능 중 하나인 'K-POP 스타‘. 프로그램의 문법이 독특하다. 악마의 편집, 감동의 스토리도 없는데 무엇이 이런 강한 흡입력을 만들었는지 개인적으로 고민해볼 지점이다.

‘K-POP 스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3대 요소인 심사위원, 무대, 편집을 모두 완벽히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심사위원이 메이저 3대 기획사의 사장 및 간부 급, 이라는 데서 오는 무지막지한 신뢰성이 프로그램을 크게 지탱하고 있다. 신뢰성이 음악적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를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진짜‘ 스타를 배출할 확률이 높은 ’진짜‘오디션이라는 느낌. 이것이 주효하다. 아무리 타방송사에서 위대한 슈퍼스타들이 탄생을 한다고 해도 실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경험으로 누적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참가자들은 시청자들이 욕망을 투여할 만한 안정된 대상이 된다. 나는 예능을 형식적으로 다큐멘터리적 드라마라고 ’나름‘ 규정하는데, 그런데 이것이 판타지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됐든 실제 내가 아니라는 것에 드라마라는 것은 여전하지만) 훌륭한 흡입 요소가 된다. 요즘 사람들이 욕망을 투영할 만한 대리자를 너무 많이 찾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삶이 너무 고단하기 때문에, 꿈이라도 꾸고 싶은 심정으로 TV앞에 모이는 데 그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고 그 열풍 속에 진짜배기가 등장한 셈. 여기에 참가자들의 실력이 더해지고, 신파극을 꾸미거나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지 않는 제작진의 절제가 플러스 요인이 된다. 그야말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미덕을 실로 다 갖췄다. (하나 더 꼽자면 메이저 기획사를 심사위원석에 앉히고, 최고급 마이크를 여러 대나 과감히 사용하는 SBS의 자본? 어쩌면 모든 것에 시작점일수도... 있겠다.)

대개 참가자가 걸러지고, 합숙 혹은 전문적인 지도가 시작된 후 시청률이 드라이브하는데, 이제 중반 레이스로 들어가는 데도 반향이 상당하다. 오디션 레이스를 초반/중반/후반으로 나누면 예선 부분인 초반은 ’K-POP스타’가, 주로 합숙 기간이 되는 중반 부분은 <위대한 탄생>이, 생방송 무대로 꾸려지는 후반 부분은 <슈퍼스타K>가 더 효과적으로 꾸미고 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 요소 중 ‘심사위원’ 보다 참가자들의 실력과 성장세, 편집 능력이 더 많이 요구되는 중반 이후의 전개를 ‘K-POP 스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연초 엄살 (조급증 발사!) 일상


자, 잠깐. 지금 나는 무척 조급하다. 일단 나의 시간을 마련하고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이 상당히 뒷전으로 밀렸다. 그리고 당장에 안도할 만한 곳, 기댈 언덕을 찾기 바쁘다. 다른 것 보다 요즘, 내게 일어났던 일을 정리하는 데서 시작해보자.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좋다. 이건 재밌다. 좀 더 왜 일찍 안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온갖 핑계와 합리를 들며 이리 저리 피해 다녔는데 회피의 동력은 겁이었다, 겁. 저기 노란 사람이 뭐라 지껄이는데 입이 움직이고 소리 비슷한 게 들리는 데 젠장 도통 알아듣질 못하겠고 뭐라 말하지도 못하겠고 세이 예에라도 할까 일본어를 해볼까, 이런 그림이 훤했거든. 흡사 나체로 발가벗겨져 도망 다니다 쪽팔림이 실은 고추의 크기에서 기인했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릴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웠다. 남들에 비해 뒤쳐진 게 부끄러워 영어 담론에서 자유로운 보헤미안 코스프레를 해온 것이다.

내친 김에 토익도 시작했다. 1학년 때 본 처음이자 마지막 토익 시험에, 500점 나왔다. 이걸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실은 자폭에 가까운 공공 자위였다. 너희들이 놀려봤자 난 창피하지 않다고 먼저 선포한 셈이다. 그렇게 영어 좀 못하면 어떤가 싶다가도 시간 비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게 영어 학원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후딱 해치우는 게 속편하겠다. 눈 딱 감고 서류 심사 통과 이외에 쓸모를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찾아보려고 애써봤던, 못 찾겠다 싶어 뒷전으로 미뤄놨던, 이 애물단지를 처리해야겠다. 근데 말이 쉽지. 꾀꼴 꾀꼴.

그리고 스터디도 해보려고 독서 토론 모임 하나랑 종합 스터디 하나 신청해뒀다. 초보라 어째 까일 것 같지만 사방을 뒤져서 어디서든 한번 해봐야겠다. 성민 누나는 스터디 그룹에서 공부하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아이디어 내봤자라며. 철민 형은 분위기 좋은 스터디 꼭 구하라고 조언했다. 근거를 들어 대구를 맞추려 했는데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질 않네. 여하튼 둘을 저울질 했고, 그렇게 결정했다. 비결과 첩경만을 모색하는 이 삭막한 모임에는 별로 끼고 싶지 않았건만, 전례를 믿고 힘차게 해보리. 스터디 커리큘럼에 따라 여차하면 다음 달 한국어 능력시험까지 보게 된다. 하루 차이로 토익 시험도 보는데 이래도 되나 싶긴 하다.

이어 신문도 하나 더 구독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신문인데 당장에 목표는 지금 집으로 배달되고 있는 중앙일보랑 함께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이고, 3월 즈음 학교 근처에 살게 되면 그쪽으로 주소를 이전에 받아보려는 심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읽는 것. 꾸준히 읽으며 세상을 읽으며 아침을 보내는 것. 부족한 시사 상식과 좁고 얕은 생각의 도랑을 메우는 것,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좀 전투적으로 할 참이다.

연초의 극한 혼란 속에서 그래도 차분히 마음을 다잡고 내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이때껏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이란 마치, 뭐랄까, 흡사, 말하자면 말야,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사회의 뜻 있고 꿈 있는 표준적인 젊은이의 삶 척도를 가져다 대자면 그냥 전기장판 위에 누워 고추나 만지작거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꿈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 아아. FM과 예능 프로그램에 미쳤던 청춘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치 태양계로부터 쫓겨나기 전 명왕성이 된 기분이랄까. PD의 자격이란, 소양이란 무엇인가를 지금껏 나는 너무 낭만적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우주를 부유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앉아있다. PD가 되기 위해 나는 영어와 씨름하고 한글 맞춤법을 숙지하며 신문을 매일 두 부씩 보고 영화를 보고 예능을 보고 책을 볼 생각이다. 실은 자위를 부르는 내 청춘의 경험치는 그리 하찮은 것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매일 예능을 보고, 대개 글도 쓰고, 가끔 촬영하고, 어쩌다 공부도 했던 삶이란 그냥 그것 그대로 즐거웠으니까, 그래도 순간마다 멈춰 서서 자각을 갖추고 다시 살기를 반복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주체적인 시간이었으리라. 이제 그 한 줌의 흙 위에 씨를 뿌리는, 고추에서 나오는 씨 말고, 열매를 희망하며 뿌리는 레알 씨앗 말이여. 그러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삶을 운용해나갈 각오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다소,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 아무려나 좋은데 심심하다.

+) 저혈압과 기면증과 카페인중독의 악의 고리를 끊고 싶다.

+) 그래서 운동도 좀 해야겠다.


새해 단상 개소리



스물 다섯이 되었다. 이번엔 조금 감회가 새롭다. 어떤 경계 위에 올라 선 채 위태로운 형국이다. 왜 인디아나존스 같은 작품을 보면 뒤에서부터 도미노처럼 무너져 오는 땅 위를 맹렬히 달려 탈출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나 역시 여태 그리 달려오다 문득, 여기서 질주를 멈추면 어떻게 되지? 저 깊숙한 낭떠러지는 어떤지? 궁금증이 이는 것이 근래의 감회다.

비결과 첩경만 모색하는 효율성의 사회에서
하멜른의 피리소리에 스스로 대오를 맞추는 생쥐들처럼
출근길 2호선을 타고 공중부양하는 박대리처럼,
초조함과 조급증을 가슴 속 멍울로 응겨 매고 나는
꾸역꾸역꾸역꾸역 살고 있다.

(2년 전에 이랬었다. 작년은 속편했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나봐 원래.)

요컨대 여전히
막연하고 묘연하며, 요원하다.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나는 버티며 산다.

근래 지긋이 인생을 성찰하며 계획을 수정할 기회가 없었기에
일단은 그냥 올해도 그래보기로 한다.
버틸 때 까지 버텨본다.

다만 언제나 하던 다짐을 다시 굳혀 본다.
내 스스로 즐거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힘껏 행복하겠다. 이와중에도 어떻게든
재밌게 살아보겠다.
꾸역꾸역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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