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음에


머물러 있는 시간인 줄 알았다. 아무 준비도 없이 이십대가 끝났다. 서른이 됐고, 이후의 준비 역시 없다. 시간의 속력에 둔감해진 것은 몸뚱아리가 한 곳에 박혀 머물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새 나는 반경 1km 안에서 일하고 잠자며 생활하고 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어제 본 사람을 또 보고, 퇴근하면 곧장 귀가해 배를 긁다 잠드는 삶이 도돌이표를 찍은 듯 반복된다. 어떻게 좀 해볼 셈으로 급히 짐을 챙기고 짧은 여행을 떠났다. 농구의 작전 타임처럼.

 

서른이 되고 며칠이 지났지만 놀랍도록 아무 일도 없다. 갑자기 주름이 늘거나 몸이 쇠해지지도 않았고 심경은 더없이 안온하다. 일을 하고 여자를 만나는 사회의 과업들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겠다. 비슷하게 생긴 직장인들 사이에서 걸으며, 하늘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빼곡한 산업 단지 속으로 들어가며, 삶이 이런 식으로 굴러가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 아주 저차원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뿐인데 나는 이토록 게으르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자, 이상은 그 다음에 그리자고 생각했는데, 애초부터 푯대는 없었다.

 

문득 살아온 만큼 한 번 더 살면 나이 육십이 된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정말 부족해 보였다. 아직 난 잘 늙을 계획이 서지 않았고, 인생을 걸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결심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서른 다음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 시간을 달려 온 공주에서 조금의 힌트라도 얻어가길 원한다. 물론 막상 와보니 여긴 그저 한적한 중도시이자, 온 팔 벌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필사의 동네였다. 공기도 내가 사는 구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달아나온 그 거리만큼, 빗겨 서서 나를 객관화해 보자. 그리고 궁리하고 찾아내자.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욕망들과 저마다의 절박함 사이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과 기대의 무게를 견디고 버티며, 향해야 할 지점을 말이다. 찾지 못하면 이후의 인생은 늘 그랬던 대로 평균적 사고에 갇히고 만다. 

 

..를 마지막 문장으로 하려니 결기 과잉의 느낌이라 치킨 얘기를 덧붙인다. 내일은 부여로 넘어가 ‘시골통닭’을 음미해볼 생각이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 같다.      




생각정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겨운 이 물음에 요 근래 쾌적하게 생각이 정리된 순간이 있었다. 물론 아직 그 답은 가설에 불과하고, 언제 뒤집어질지 모를 만큼 단단치 않다. 하지만 어두운 길 위 희미한 방향등 하나가 켜졌기에, 나는 단출한 마음으로 그리로 갈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그 화살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다. 다만 단출한 마음이 제... » 내용보기

언프리티 랩스타 단상

1.    감정 유도 자막이 적다. 내레이션도 없다.     대신 인터뷰,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절해 그 기능을 대신한다. 정보량이 적으니 시청자들의 해석이 더 자유롭게 개입된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다른 해석들이 나올 것이다.    리얼리티... » 내용보기

김종일 <손톱>

(스포가 있다)실망이 크다. 이 작가가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선봉이고, 대표작이 이거란 사실에 실망감이 이 작품을 넘어 한국 미스터리 시장 전반으로 번진다.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결말인데, 주인공이 선택적 기억상실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정말 책을 덮어버릴 뻔 했다. 과장을 좀 보태 주인공이 선택적 기억상실에 걸렸다면 무슨 일이든 벌어져도 상관없다. ... » 내용보기

크라임씬은 하드보일드인가 본격 추리인가

크라임씬은 미스터리/추리 장르의 예능이다. 추리 서사에도 여러 소분류가 있는데 크라임씬은 정확한 서사 유형을 못 짚고 있다. 정확히는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드라마틱한 범행 현장이 등장하지만, 전모가 드러난 사건을 보면 일반적인 수준이다. (실제 사건을 이식했기에 파격의 한계가 있다.) 이 판은 하드보일... » 내용보기